고민해보고서#5 명절 오지랖

관리자
2019-06-05
조회수 1978

“명절에 집에 가기 싫어요” 


또 돌아왔나 봅니다. 명절이네요. 근데, 언제부터 이랬던 걸까요? 요즘 명절에는 설레는 발걸음 썰보다는 스트레스 썰이 더 많이 보입니다. 세상이 달라져 명절이 스트레스가 된 건지, 명절이 스트레스라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저 잘되었다 싶습니다. 명절이 좋지만은 않은 내가 그리 잘못된 건 아니구나 싶어 안도가 되기도 하니까요. 


명절 스트레스의 가장 큰 축은 사람 스트레스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스트레스의 정중앙에 ‘명절 오지랖’이 있을 겁니다. 명절에나 겨우 뵙는 친인척들의 무례한 참견이나 간섭 같은 것 말입니다. 최근엔 이렇게들 치고 들어옵니다. “요즘에는 취직 언제 하냐 물어보면 안 된다면서? 하하하"

명절 오지랖은 간섭이기 쉽습니다. 간섭은 관심과는 아예 다른 것입니다. 관심이 상대에 대한 좋은 감정에서 나오는 호기심, 끌림인 반면 간섭은 대상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 기준에 끼워 맞추려고 개입하는 것입니다. 관심은 상대를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간섭은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따르기만 바랍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그 간섭은 ‘너 지금 잘되고 있지 않다’라는 부정적 판단과 ‘내 식으로 해라’라는 개입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관심과 달리 간섭은 우리를 불쾌하게 합니다. 


때로 관심과 간섭이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니 딱 갈라놓기는 힘들겠지만, 올해 몇 살 되냐로 시작되는 명절 오지랖은 관심이라기보다는 간섭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러니 명절 오지랖이 듣기 싫은 건 자연스럽습니다. 혹시라도 명절 오지랖에 대한 불쾌함을 자격지심 같은 것으로 자책하거나 애정 어린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한 편협함 같은 것으로 미안해한다면 그러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간섭이 받아 마땅한 대응을 당당히 하길 바랍니다.


간섭이 받아 마땅한 대응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하고 재기 발랄한 조언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이 보고서에는 굳이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런 것들 중에서 저는 ‘은퇴 준비는 잘되세요?’ 같은 맞간섭 버전을 제일 좋아합니다. 실제로는 ‘근데 오늘 잡채 잘됐네요’ 같은 딴말 버전을 써먹고 있지만요. 여러분들도 몇 가지 준비해 두셨다가 집안 분위기, 그분의 성향, 내 감당치 두루 봐가며 골라 쓰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런 대응법들이 그저 내 자아감을 흔들 수 있는 성가신 자극을 쳐내기 위한 임시적 방편임은 다들 아실 겁니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자극에도 의연할 수 있는 자아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죠. 자아감이 취약하면 오지라퍼가 입 다물어주고 있는 것에도 맘 상할 수 있으니까요. 음... 얘기가 매번 기승전 자존감 같아지는 건 피하고 싶습니다만, 이게 워낙 중요한 것이다 보니 그러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의연한 자아감이 맘먹는다고 덜컥 되는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새해에도 쭉 정진해 볼 밖에요. 


그렇게 나아가는 길에 고민해 보고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겠다, 저의 새해 다짐을 다시 새겨봅니다.  

잼고미 독자 여러분, 의연한 자아감으로 쭉 나아가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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